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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아메리카노 논쟁

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는 것 가지고 지금 진보정치권 내부적으로 싸움박질을 하였다. 싸움의 발단은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의 남편 백승우 통합진보당 전사무총장이 올린 글 때문이다.  이 글에서 백씨는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인 유시민, 심상정 의원이 회의때 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이 커피를 비서들로 하여금 커피샾에서 사오도록 하여 노동자 민중과 함께한다는 진보진영의 가치와 배치된다는 비난을 하였다.

이에 따라 온라인 상에서는 과연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를 가지고 비난하는게 올바르냐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커피심부름 시키는 걸 가지고 이념적 시비를 거는 것을 보면서 참 이념적으로 경도되어 있고 조직문화라는 상식적인 사고와는 동떨어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딴지걸기를 통해 구당권파의 독선과 오만이 가려질 수 있다구 생각한다면 오산일게다. 

아메리카노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가. 논란거리를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미제국주의의 상징인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에 대한 비난이고, 둘째는 비서를 시켜 커피를 사오도록 한게 노동자간 계급화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인터넷 상의 논란을 보면 첫째에 대한 얘기가 많이 있던데 과연 그것이 논란의 중심인지 의문이다. 백씨의 주장을 원문으로 보면 백씨의 주장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자체보다 심부름을 시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비판에 무게를 둔 것이다. 백씨의 주장을 원문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아메리카노 커피를 비서실장이나 비서가 항상 회의중 밖에 커피솝에 나가 종이포장해 사온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이해가 안가고 민망해서 모 공동대표 비서실장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공동대표단회의 앞두고 매일같이 밖에 나가 비서실장이 아메리카노를 사옵니까?라고...비서실장이 말을 못하는겁니다."

백씨의 주장은 왜 진보진영에서 권력관계에 기반하여 인격모독적인 심부름을 시키냐이다. 인터넷 상에서 아메리카노를 제국주의 상징으로 보거나, 커피믹스가 아닌 왜 아메리카노를 마시냐 등으로 백씨의 주장을 보고 비판을 가하는건 잘못된 방향의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백씨의 주장을 이런 식으로 보는건 그런 편이 논점이 단순하거나, 희화시키기 쉬워서가 아닐까. 백씨의 주장과 맞지않은 논란은 더이상 언급이 필요없다 하겠다.[각주:1]

둘째 문제인 권력관계에 기반하여 인격모독적인 커피심부름을 시킨 사안은 '이념적' 측면에서 시비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얘기하는건 이념적 측면-또는  관념적, 이상적 측면-으로만 볼 땐 그러하다는 의미이다. 

세상을 실용적 측면을 무시하고 이념적인 잣대로만 보고 판단하는걸 이념과잉이라 칭할 수 있다. 이 논란도 조직을 움직이는 상명하복과 역할분담의 원칙을 도외시하고 단지 이념적 측면에서만 문제를 제기한 이념과잉으로 볼 수 있다. 

조직이 왜 존재하는가. 조직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함께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원은 '각자 맡은 바' 역할을 가지고 이에 따라 행동을 하여야 한다. 이를 역할분담이라 한다. 역할분담에 따라 조직 상위층은 하위층에게 하찮고 귀찮은 일을 명령이란 이름으로 넘기게 마련이다. 그게 상위층으로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게 넘겨 받은 하찮고 귀찮은 일을 지시받은 조직의 하위층이 담당하게 된다. 이게 바로 싫던 좋던 조직의 생리이다. 

이러한 역할분담과 상명하복의 원칙이 어느 조직에서나 살아 숨쉬는데 이는 도외시하고 진보주의자는 그러면 안된다고 노동자의 권력관계라는 명목으로 비판하는건 이상주의적이라 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과거 전대협시절 수령론을 외치던 '의장님'문화의 주역이 자유주의자가 된양 비서의 커피심부름을 비판하는건 위선에 가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신문을 보니 유시민씨가 '한번 사는 인생,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소소한 즐거움까지 포기하면 너무 슬프지 않겠나요'라고 하면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커피심부름에 대한 문제제기를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고 겸손하게 처신하고 검소하게 살겠다고 했다.

유시민씨 이번 일을 통해서 보니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옳은 말을 참으로 싸가지없게 하는' 능력자인건만 아닌 듯 하다. 

이에 반해 과거 민주화 세력이었다는 사람들의 돌처럼 굳어버린 사고와 세계관을 보는 듯하여 절망스럽기도 하다. 최근 통합진보당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태를 보며 과거 민주화 세력이란 사람들의 위선과 가면이 낱낱이 벗겨지는 모습이 씁쓸함을 자아낸다.

  1. 신문기사들을 보니 백씨의 비판글 내용과는 달리 실제로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자체를 비판한 듯 하다. "통합진보당이 때아닌 커피 논쟁에 휘말렸다. 구당권파의 핵심인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지난 주말 당 홈페이지 게시판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즐겨 마시는 유시민 전 공동대표를 비난하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그는 “유시민 전 공동대표와 심상정 의원의 공통점 중 하나는 대표단 회의 전에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라며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을 보면서 노동자·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고 썼다. 노동자와 민중을 위한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미제(美帝)의 상징’인 아메리카노 커피를 마실 수 있느냐는 힐난으로 들린다. 놀라운 상상력이다. 아메리카노 커피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 배치된 미군 병사들이 에스프레소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어 연하게 해서 마셨던 데서 유래했다. 이름만 아메리카노지 사실 미국과 별 상관이 없다. 내가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를 좋아하는 것처럼 커피를 마시는 여러 가지 취향의 하나일 뿐이다.(중략) 싸움을 할 생각이라면 싸움이 될 만한 걸 갖고 싸움을 걸어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재미가 있다. ‘진보는 미숫가루만 먹어야 하나’ ‘커피믹스는 진보고 아메리카노는 착취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백 전 부총장은 슬그머니 논점을 흐렸다. 비서를 시켜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해 마시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지적한 것이란 얘기다."<중앙일보, 2012.8.22. 분수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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