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의 원문은 2010년 9월 The Chronicle of Higher Education에 실린 Michael C. Munger 듀크大 정치학과 학과장의 10 Tips on How to Write Less Badly 입니다. 모쪼록 (이 글의 주 대상인) 대학원생을 비롯하여 글을 준비하는 모든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대학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글쓰기에 할애한다. 관리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다지 글쓰기에 능수능란하지 못하다. 나는 여태껏 왜 우리 직종에서 산문 쓰기를 그렇게 중시하면서도 실제로 이를 가르치지는 일은 드문지 이해를 못했다.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면서 나는 무척 뛰어난 학생들이 단지 글쓰기를 못해서 (혹은 안해서) 실패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또한 그다지 뛰어나지 못한 학생들(나는 그 중 하나를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본다)이 어떻게 글을 쓰는지를 익혔기에 잘 해내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학생들이 대학원에 들어오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수강하는 입장에서 글을 쓰는 입장으로 바뀌면서 실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처음 2년동안 모두의 경외 어린 시선을 받던 학생들 중 대부분은 갑자기 별 볼 일 없는 학생으로 전락한다. 그리고는 그닥 주목도 못 받고, 내주는 숙제를 모두 해오면서 교수들을 기쁘게 해주는 데에도 관심이 없던 소수의 학생들이 갑자기 자신의 논문을 저널에 올리더니 어느새 학자가 되어버린다.
그 차이는 복잡한 것이 아니다. 글쓰기의 문제이다.
이 지면을 빌어 많은 이들이 글을 잘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야기해왔다. 물론 사실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학문에서 요구하는 글쓰기의 수준은 낮은 편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글을 잘 써야할 필요는 없다.
내가 아래에 적은 10가지의 팁은 학문적 글쓰기에 있어 덜 나쁘게 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1. 글쓰기는 연습이다
연습할수록 보다 나아지고 보다 빨라진다. 만약 이듬해에 마라톤을 뛰어야 한다면 몇 달간 그냥 놀고 있다가 갑자기 42.195km를 달리겠는가? 그보다는 매일, 조금씩 달리면서 체력을 쌓아나갈 것이다. 처음에는 평평한 지면에서 달리다가 조금씩 난이도가 있는 지형에서 달리기를 시도할 수도 있다. 저자가 되려면, 응당 써야한다. 어떤 책의 원고나 리뷰가 당신의 글쓰기를 나아지게 해주길 기다리지 마라.
2. 투입이 아닌 산출을 가지고 목표를 설정하라
“세 시간 동안 글을 쓸 거야”는 망상에 불과하다. “세 페이지를 써야지”가 목표다. 세 페이지를 쓰고 나면 이제 다른 걸 하라. 다음 수업을 준비하거나 미팅에 참석하거나. 이따가 뭔가를 더 쓰고 싶어진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 해도 괜찮다. 당신은 이미 뭔가를 쓰지 않았는가.
3. 자기 목소리를 찾아라 — 그저 출간될 수 있는 것만 찾지 마라
제임스 부캐넌은 1986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가 면접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에게 질문하던 것 중의 하나는 “10년 후에도 읽힐 수 있는 걸 쓰고 있는 게 있습니까? 100년 이후는 어떻습니까?” 였다. 누군가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무척 겁나는 질문이었다. 그리고 당혹스러웠다. 우리들 대부분은 그런 방식으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우린 출간되는 것에 집중하지 않는가. 심지어 우리가 어떤 사상이나 주장에 대해 쓰는 것임을 잊어버릴 정도로.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출간되는 것’에 집중할수록 오히려 출간되는 것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쓰는 것은 훨씬 쉽다.
4. 충분한 시간을 들여라
똑똑한 사람들 대부분도 스스로에게 “나는 마지막 순간에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다”는 한심한 거짓말을 하곤 한다. 생각해보라, 그건 사실이 아니다. 그 누구도 압박에 시달릴 때는 능률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당신은 똑똑한 사람이다. 하지만 당신이 심오한 문제에 대해 쓰고자 할 때, 과연 컨퍼런스 바로 전날 밤에 글을 쓰는 것이 최적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있는가?
저자들은 이런 저런 생각들과 씨름하며 몇시간이고 책상에 앉아 있곤 한다. 다른 똑똑한 사람들과 저녁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질문을 하기도 하고 대화를 한다. 기나긴 산책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더 많은 양을 써내려간다. 지금 글쓰기 실력이 그다지 좋지 않거나 당장은 쓸만한 게 나오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이디어는 글을 쓰면서 나오는 것이지,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나서 그걸 받아적는 것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이후에도 읽혀질 책이나 논문들은 그 저자들이 책상에 앉아 심오한 생각들을 글줄으로 옮겨내고 또한 그 글줄들이 더 많은 생각들로 이어질 수 있게끔 씨름한 결과이다. 충분한 시간을 들인다면 글쓰기는 하나의 마법과도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특정한 순간에 당신의 마음 속에만 존재했던 생각을,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도 나타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 직접 쓰지 않은 건 다 그럴싸해 보인다
쓰지 않은 것일수록 더욱 그럴싸해 보인다. 우린 이런 입심좋은 대학원생이나 교수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이 가장 자신만만할 때는 한 손에 맥주를,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어느 술집이나 파티에서 있을 때다. 그들은 모든 답을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쓸 것이 대해, 그리고 그게 얼마나 대단할지에 대해 곧바로 말해줄 준비가 되어있다.
여러 해가 지나고도 그들은 “지금 무엇에 대해 쓰고 있나요?”라는 질문에 잘 준비된 200여자의 똑같은 대답을 가지고 있다. 대답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들은 이 그럴싸한 연기 이외에 어떠한 작업도 직접 수행하고 있지 않으니까.
반면에 당신은 실제로 뭔가에 대해 직접 쓰고 있고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방금 쓴 부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고 그 다음에 무엇이 이어질지 확신이 없다. 그때 누군가가 “지금 무엇에 대해 쓰고 있나요?”라고 묻자 잠시 주춤한다. 설명하기 쉽지 않으니까. 맥주와 담배를 든 그 자신만만한 사람은 그저 폼만 잡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수백 잔의 맥주와 수백 개비의 담배꽁초가 그를 거쳐가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그럴싸한 짧은 대답을 연습할 수는 있을 게다. 속지 말라. 승자는 당신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뭔가를 최선을 다해 쓰고 있다면 계속 뭔가 부족한 것만 같고, 내가 바보인 것만 같고, 피로감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런 기분이 안 든다면 아직 열심히 하고 있는 게 아니다.
6. 퍼즐을 만들어라
당신의 작업을 어떤 퍼즐에 대한 해답처럼 묘사해 보라. 여러가지 흥미로운 퍼즐의 형식이 존재한다:
- X와 Y는 동일한 전제에서 출발하여 서로 반대되는 결론에 이른다. 어떻게 그리 되는 것일까?
- 각기 다른 것으로 보이는 세 가지 문제가 있다. 놀랍게도 이들은 그렇게 보일 뿐, 실은 모두 같은 문제이다. 이제 왜 그런지 설명을 해보겠다.
- 이론이 예측하는 것과는 달리, 관측의 결과는 이렇다. 이론에 잘못된 것이 있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간과한 다른 변수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형식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지만 이런 형식은 강의를 할 때나 논문의 독자들에게 당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유용하다.
7. 우선 써라 — 다른 일은 남은 시간에 하라
모든 업무에서 글쓰기를 최우선으로 하라. 나는 어쩌다 보니 ‘아침형 인간’이 되어 있어서 아침 일찍부터 글을 쓴다. 그리고는 하루의 나머지를 가르치거나 누군가를 만나거나 서류작업을 하는 데에 쓴다. 당신은 ‘저녁형 인간’이거나 뭐 그 중간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당신이 가장 생산적일 때를 글쓰기에 투자하라. 뒤늦게 떠올라서 급하게 쓰기 시작하거나 충분한 시간이 있을 때 쓰겠다고 생각하지 말라. 다른 건 나중에 하고 글쓰기를 먼저 하라.
8. 당신의 생각이 다 심오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다루는 큰 문제를 분석하는 데에 실마리를 잡지 못해 좌절하여 글쓰기를 중단하곤 한다. 그러니 작게 시작하라. 등산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한 발자국씩 나아갔을 뿐인데 어느덧 이렇게 높이 올라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랄 때가 있다. 질문을 다듬고, 사용하는 어휘를 정제하며, 자신의 주장이 어떻게 먹혀들게 할 것인지를 글을 마치기 전까지 파악하기란 어렵다.
9. 당신의 가장 심오한 생각은 종종 틀릴 때가 있다
혹은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을 때가 있다. 질문 자체가 어렵다면, 보다 정확하게 질문을 하고 당신만의 퍼즐을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입 대학원생이 자신이 무엇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논문으로 무엇을 쓰게 될 것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볼 때마다 항상 웃음을 참는다. 훌륭한 학자들의 대부분이 연구와 그에 대한 글쓰기 경험을 통해서 크게 변화를 겪는다. 시도를 통해 배우고 가끔씩 자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배우기도 한다.
10. 고치고 또 고쳐라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어라. 학계에 있다는 것의 가장 큰 이점 중 하나는 모두가 함께 한다는 데에, 그리고 우리 모두 순백의 화면에서 깜빡이는 커서의 공포를 잘 알고 있다는 데에 있다. 멘토 또는 동료들과 글을 교환하고 글쓰기에 지쳤을 때 그들의 글을 읽는 것으로 보답하라. 그 누구의 초고도 대단하지 않다. 성공한 학자와 실패한 학자의 차이는 글쓰기 능력에 있지 않다. 더 잦은 퇴고가 있을 뿐이다.
글을 쓰다가 문제에 봉착했다면 아직 글을 충분히 쓰지 않은 것일 뿐이다. 내게 수십 페이지의 글을 쓰는 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여전히 글을 잘 쓰지 못해 전업작가의 길을 걸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나는 위의 팁들을 생각하며 그대로 따르기 위해 노력하면서 내게 필요한 수준의 글을 쓰고 경력을 쌓아 나갈 수 있었다.
원문 링크는 http://ppss.kr/archives/1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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