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집사람과 함께 오랜만에 (조조가 아닌) '낮시간'에 영화를 보았다. '이웃사람'이란 영화로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슴아픈 이야기와 사람들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연쇄살인마가 영화초반부에 드러나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긴장감은 없다.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이미 드러나고 알게된 살인범을 사람들이 이기심과 책임회피로 밝히지 않으면서 영화는 답답하게 맴도는 느낌이 든다.
가방가게 주인은 가게 영업에 방해되고 내 일이 아니라서, 경비원은 숨어지내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나는게 두려워서, 피자배달원은 바빠서 진실을 외면한다. 이렇게 서로 진실을 외면하면서 이야기는 겉돌고 불필요한 긴장감만 관객에게 주는 듯 하여 약간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첫번째 여자아이가 죽고 두번째 여자아이인 수현(김새론)이에게 살인마의 관심이 가면서 이를 둘러싸고 살인마와 아이를 지키려는 사람들간의 긴장으로 마지막 부분은 긴박하게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클라이막스를 향해간다.
영화의 첫 자막이 "죽은 딸이 일주일째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이다. 죽은 여선이가 집으로 매일 돌아오는데 새엄마는 돌아오는 여선이 두렵기만 하다. 귀신이 매일 집에 나타나니 말이다. 그렇지만 죽은 여선에게 따뜻한 식사를 권하면서 함께 하고자 할때 모녀는 죽음을 뛰어넘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게 된다.
살인마 승혁은 여선을 죽인 후 집안을 환하게 밝히고 지냈다. 죽이기 위해 잡아온 가방가게 주인 옆에서 잠을 자면서 까지 말이다. 살인마는 '내가 죽인 여학생이 일주일째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마지막 자막처럼 죽은 여선의 모습을 매일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첫 자막과 마지막 자막간의 상응으로 이야기의 열리고 닫힘을 절묘하게 보여줬다.
이 영화는 나와 내 가족에게만 문제가 생기지 않으면 누가 살인을 하던말던 간섭할게 없다는 날것 그대로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토요일에 영화를 보고 일요일에 성당에 갔는데 주보를 보니 불의앞에서 회피하고 모른 체하는 우리의 모습을 꼬집는 글이 있었다. 바로 영화 '이웃사람'에서 여실하게 보여준 우리의 모습 말이다. 강승한 세바스티아노 신부님의 글인데 일부를 인용해 보겠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불의와 아픔이 만연합니다. 매일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안좋은 소식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인간의 탐욕과 욕심에서 비롯되기 마련입니다. 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사실 악이 만연한 현실 앞에서 우리의 힘은 보잘 것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불의와 아픔을 마주하고도 이를 그냥 지나치기가 일쑤입니다. 불의 대신 정의가 자리해야 하고 아픔이 있습니다만 내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선뜻 나서기가 힘듭니다. 사실 남의 아픔보다는 지금 나의 행복이 더 소중합니다. 괜히 나서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보다는 나와 내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비참한 현실을 두고도 눈을 감습니다. 간혹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잠깐만 눈을 감고 지나치면 삶이 편해지니까요.
(중략)
우리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복음은 2,000년전 이스라엘에 살았던 예수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만 남겨질 뿐 우리 자신의 이야기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한 복음은 죽은 복음일 뿐입니다. 복음을 죽은 채로만 남겨둔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당당하게 신앙인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불의와 아픔이 만연한 이 세상을 정의와 사랑으로 채워 나갑시다. (후략)"
정의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채워 나가는게 어디 신앙인만의 몫이겠는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몫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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